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레/국가대표 경력 (문단 편집) === 조별 리그(16강) === 첫 상대는 오스트리아였다. 브라질은 주제 아우타피니의 한 골로 일찍 앞서나갔다. 그리고 경기 50분, 펠레와는 별 관련 없지만, 역사적인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가 오버래핑하여 골을 넣어버린 것'''이었다. 니우통 산투스는 [[보타포구 FR|클럽]]에서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보여주는 수비수였고, 브라질 감독 비센치 페올라는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해 니우통 산투스에게 공격 참여를 자제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그런데 그것을 상큼하게 씹어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풀백 포지션의 선수가 기록한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필드골이었다. 니우통 산투스의 이 골로 인해 브라질은 첫 경기부터 관중들에게 인상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펠레는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회복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다음 상대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였다. 1차전에서 소련과 2:2 무승부를 거두었던 잉글랜드에는 [[톰 피니]], [[조니 헤인스]], [[빌리 라이트]], [[바비 찰튼]][* 찰튼은 이 당시 [[뮌헨 비행기 참사]]에서 살아 돌아온지도 얼마 안 되었던 상태였고, 그래서 찰튼보다는 톰 피니와 빌리 라이트, 조니 헤인스가 잉글랜드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찰튼은 22인 명단에만 있었다. 1958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스쿼드에는 현대 들어서 감독으로 더 유명세를 얻은 [[바비 롭슨]]도 있었다.] 등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있었다. 이런 잉글랜드에 비하면, 브라질은 일종의 '검증되지 않은 팀'이었다. 주제 아우타피니 등 브라질이 자랑하는 최고의 공격수들은 잉글랜드의 캡틴 빌리 라이트를 뚫어내지 못하고 매우 고전했다. 잉글랜드는 공을 빼앗을 때마다 무섭게 역습을 해 왔다. 공격형 미드필더 조니 헤인스는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패스들을 구사하며 브라질을 괴롭혔다. 다행히 골키퍼 지우마르가 맹활약하며 모든 찬스를 막아내 준 덕에 한 골도 실점하지 않았고,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무득점 경기로 남았다. 펠레는 경기장 한구석에 앉아 조니 헤인스의 환상적인 패스 쇼를 지켜보며 감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패배해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으나 지우마르가 지켜낸 경기였고, 이 환상적인 활약을 계기로 지우마르는 펠레의 지속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고르 네토, [[레프 야신]], 유리 보이노프 등 상당한 실력자를 데리고 있었다.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우승한 대표팀의 주축 멤버들을 거의 그대로 끌고 온 터라 그들의 실력은 검증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심할 만한 사항은 월드컵에 개근한 브라질과 달리, 소련은 월드컵에 나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소련에게 지게 된다면 조 2위가 되는 셈이었고, 다음 상대는 개최국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스웨덴은 개최국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홈 어드밴티지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고, 거기에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 오바르 베리마크 등 유럽 각지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던 선수들을 그대로 데려왔기에 선수들의 클래스 역시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8강부터 이런 괴물같은 팀을 만난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거기에, 소련에게 지고 동시에 잉글랜드가 이기게 되면 아예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비센치 페올라에게 펠레가 부상에서 회복되어 경기에 출전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페올라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선발 명단에 펠레를 올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58 월드컵 브라질 포메이션.jpg|width=100%]]}}} || || '''{{{#007000 19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주로 사용한 포메이션}}}''' || 페올라는 펠레와 [[가린샤]]를 공존시키고 최대의 활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4-2-4 진형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축구 역사에서 최초로 나온 포백 수비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훗날 [[데트마어 크라머]]가 페올라에게 이 진형에 관해 물어보자 '사실 그건 4-2-4가 아니라 극도로 유동적인 4-3-3이었다'라고 대답했다는 모양이다. 지지가 공격에 전념할 때 지투가 아무리 수비력이 절륜한 미드필더라 할 지라도 혼자 중원을 다 떠맡기 벅찰 수 있으므로 아웃사이드 레프트였던 [[마리우 자갈루]]에게 반쯤은 미드필더, 반쯤은 포워드라는 특이한 역할을 맡겼다. 이 전략은 신의 한 수였다. 가린샤는 언제나 그랬듯이 측면을 압도했다. 소련 선수들은 훌륭했지만 가린샤의 특이하고 위력적인 드리블 앞에 와르르 무너졌다. 지지의 활약도 엄청났다. 위 영상에서 침투하는 바바에게 찔러주는 저 아름다운 패스를 보라. 지지의 활약은 저게 다가 아니었다. 경기 내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클래스를 입증해 보였다. 가장 빛난 것은 지지와 가린샤, 그리고 두 골을 기록힌 바바였지만 펠레 역시 훌륭했다. 이 경기는 펠레의 월드컵 데뷔전이었다. 펠레는 페올라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펠레는 경기 종료 직전 멋진 패스로 바바의 두 번째 골에 기여하였다.[* FIFA에서는 이 골에 대해 펠레의 패스에서 나왔다고만 할 뿐 펠레의 어시스트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https://www.fifa.com/fifaplus/en/articles/pele-greatest-showdowns-eusebio-garrincha-lev-yashin|#]]] 그런데 바바의 득점 이후 펠레가 신이 난 나머지 소련의 골대로 들어간 공을 집어 들고 한번 더 차 넣는, 매너 면에서 절대로 좋게 봐 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다행히 소련의 골키퍼 레프 야신은 배포가 큰 사람이었고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갔다. 여튼 브라질 대표팀의 분위기와 조직력은 17세의 펠레가 선발 팀에 오른 이후 확실히 더 좋아졌다. 브라질은 2대0으로 소련을 이기고 3경기 승점 5점을 쌓았다. 조 1위였고,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소련은 득실차가 같았던 잉글랜드와 플레이오프를 진행하여 8강에 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